르호봇 구약성경 말씀

[스가랴 2장 복음 성경말씀] 자유에 초대된 시온(슥 2:6-9)

르호봇 2022. 12. 2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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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2장에서는 스가랴 선지자가 본 세 번째 환상에서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스가랴 선지자는 측량줄을 잡은 천사에 대한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에 대해서 말씀했다. 바벨론 땅에서 고통당하는 유다 백성이 때가 되매 다시 예루살렘을 돌아오게 되고 하나님이 포로에서 해방시켜 자유함을 주셨다.

 

자유에 초대된 시온(슥 2:6-9)

 

혹자는, 사로잡힌 유대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를 주었던 고레스의 포고가 그들 전부를 돌려보내기에 충분했으며, 바로가 그들에게 애굽과 그곳의 속박된 집을 떠나라는 허가를 내렸을 때처럼, 사람을 남기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그렇지 않았던 듯하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움직여 떠나라고 한 약 4천 명은 떠났다. 그러나 아마 대부분이 뒤에 남았었던 것이다. 그들이 포로 생활을 하는 땅은 그들 대부분에게 있어서는 자기들이 태어난 땅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뿌리를 내렸고, 정주했으며, 그들 중 다수가 매우 안락했다. 어떤 이들은 아마 거기가 더 좋아서 땅을 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내 나라란 내가 행복을 느끼는 모든 곳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나라에 큰 애착을 가지지 못했고, 거기 가는 도중에 있을 어려움도 두려워했다. 이는 나쁜 원인-즉 하나님의 힘과 약속에 대한 불신, 안일과 세상 부귀에 대한 사랑, 그들 나라의 종교와 이스라엘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으로부터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나쁜 효과를 냈다. 돌아간 자들은 어리석고 경솔하며, 마음이 변한 자라고 무언중 비난하는 격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은 해야 할 그들의 손을 약화시켰다. 이런 자들은 포로 기간 중에 노래할 수 없으니(시 137), "오 예루살렘아! 그들은 너를 잊었도다." 그들의 가장 큰 기쁨보다 너를 더 사랑하지 않고 너보다 다른 기쁨을 택했도다.

그러므로 여기 또 하나의 선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니, 그의 모든 자유로운 신하들에게 엄히 경계하여 명하기를, 그들이 어디에 흩어졌든 간에, 곧 속히 그들 자신의 땅으로 돌아와 거기서 좋은 자리에 위치하라고 했다. 그들은 큰 소리로 소환되었다(6절). "이제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망할지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는 적절히 예루살렘의 재건과 확장의 약속에 수반된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들의 평안을 위하여 그것을 세울 것이라면 그들은 그와 그의 영광을 위해 와서 거해야 할 것이며, 바벨론에서 계속 굽실거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축복으로 받은 약속과 특권은 어떤 대가를 우리에게 요구하든 간에, 그것들에게 참여하여 "그것들과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시온이 하나님의 이스라엘 전체에게 자리를 주기 위해 확장되는 때, 그들이 바벨론에 머무르는 것은 최대의 미친 짓이다. 죄악 된 상태의 얽매임은, 비록 사람이 잠시 현세의 일에 안일을 추구할 수 있더라도, 결코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와서 도망치되" 최고의 속력으로 지체 없이 하라. "네 목숨을 위해 도피하라. 뒤를 보지 말라." 그들을 이끌어 속히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다음을 숙고하게 하라.

1. 이제 그들은 흩어졌고, 그들의 상호 방위를 위해 연합하는 데 관심하고 있다(6절). "내가 너를 하늘의 사방 바람같이 흩어지게 하였으니, 몇몇은 세상의 이 구석으로 또 몇몇은 다른 구석으로 보내졌다. 이것이 오랫동안 너의 상태였으니, 너는 이제 서로 돕기 위하여 다시 모일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흩으신 것이 진노에서였다고 인정하신다. 따라서 그들은 이 초청이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과 화해하려는 선의의 징표로 여겨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부르심을 거절함으로써 그의 친절을 거부했다.

2. 그들은 이제 속박되어, 그들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오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박해자로부터 도피하여, 네 갈 길로 도주하라. 아브라함의 관대하고 은혜로운 씨가 되도록 도울 담대한 노력과 투쟁을 보도록 하자" (7절). 그리스도께서 포로들에게 친히 행하신 그 구원을 선포하셨을 때는 우리 각 사람에 관심하여 "우리를 구원하며 우리 목의 줄을 스스로 풀게 하며" (사 52:2), 우리가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우리를 다스리지 않도록" 결정하게 하신다.

시온 자신이, 여기에, "바벨론 딸과 함께 거한다"라고 했다. 그 이유는 많은 "시온의 귀한 아들들이" 거기 거하며,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교회가 있고, 따라서 장소에 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온이 바벨론의 딸과 거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 빛이 어두움과 무슨 교제를 할 수 있는가? 시온은 "그(바벨론)의 죄악과 재앙에 있어서" 바벨론의 딸과 함께 할 위험에 놓일 것이다. 따라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계 18:4). 네 자신의 땅으로 급히 돌이킴으로 너 자신을 구원하라. 오 시온아! 그리고 저 오염으로 더럽혀진 땅에 계속 머무름으로 네 자신을 망치지 말라." 하나님의 자녀의 세대 가운데 드는 자들은 이 세상의 "비뚤어진 세대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 이것이 그의 새 개종자들에 대한 사도 베드로의 명령이었다(행 2:40)

3.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셨고 잊으셨던 것 같으나, 이제 자신이 그들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것을 나타낼 것이며, 질투함으로써 그것을 변호하리라(8,9절). 돌아간 형제들이 계속 위험에 놓여 있었던 곤란과 반대를 듣는 것은 바벨론에 남아 있던 자들에게는 낙심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일어났다가 엎어지는 것보다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낫겠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 반대에 답하여, 예언자와 "이야기한 천사" (즉,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그가 받은 명령을 말한다. 여기서 그는 시간이 차면 그리스도가 이루실 위대한 구속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다. 여호와이신 그리스도, 온 하늘과 땅의 주재로서 주권을 가지신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가(곧, 아버지) 나를 보내셨도다." 예수께서 원수들에 대적하여 그의 교회를 위해 하신 일과, 하시고 계신 일은, 아버지께서 보내사 맡기신 일이었음을 주목하라. 큰 만족감을 가지고 자주 그는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를 언급하셨다.

(1) 그는 "영광을 좇아" 보내심을 받았다. 그들을 구원하는 영광스러운 시작 직후에, 그것을 완성케 하기 위해 그가 보내졌으니, 그는 시작하신 일의 완수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첫째로, 그 영광에 관계되어 있는 "유대인의 나라와 백성에게 보내진다" (롬 9:4). 그리고 그 자신이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었다. 그러나 "영광 후에," 즉 그들을 돌보신 후에, 그들을 사로잡아 그들과 그들 주변의 모든 교만한 생각을 그 자신에게 복종시킬 복음의 능력에 의해, 그는 "이방을 비출 빛이 되기 위하여 열국에 보내졌다."

(2) 그는 "그들을 노략한 열국에게로 보내졌다." 그는 구원받은 자의 해(年)와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실 해가 오면, 시온에게 행한 악을 인해서 그들에게 보복할 것이다" (사 34:8). 그는 "그들 위에 손을 움직인다." 그의 무거운 손을 그들 위에 올려놓고,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 질그릇같이 부수기" 위하여(시 2:9) 보내심을 받았다. 혹자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주 쉽게 그의 손을 놀려 그들을 굴복시키고 낮추시는 것을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지 그들 위에서 손을 놀리는 일이요, 그것만으로도 일이 이루어진다.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에게 노략거리가 될 것이며," 노예 삼았던 자들에게 노예가 될 것이며, 약탈한 자들에게 약탈당할 것이다. 에스더의 시대에 이 일이 성취되었으니, 그때 "유다인은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제어하게 되었다" (에 9:1). 마카비 시대에도 그랬다. 그 약속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적인 원수들을 정복하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심"으로써 더욱더 이루어졌다(골 2:15). 그리고 그것은 아직 복음의 교회에 역사(役事)한다. 그리스도는 복음의 교회에 대적하는 자를 모두 심판하사, 조만간 그들을 "자기의 발등상으로" 만드시리라(시 110:1; 계 3:9).

(3) 자기 교회를 위하여 그가 하실 일은 하나님의 온유한 보살핌과 사랑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되리라.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나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이는 그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지고한 표현이다. 교회에 가해진 상해를 유감스럽게 생각함으로써, 그가 얼마나 그의 교회를 아끼시며, 얼마나 교회의 이익에도 관심을 갖고 계시며, 교회에 가해진 것을 그 자신에게 가해진 것으로 여길 뿐 아니라 바로 그의 눈동자에 가해진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런데 그 눈동자란 매우 섬세한 성격을 가진 가장 부드러운 부분으로서, 이중으로 보호되어, 우리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주의를 요한다는 것과 조금만 건드려도 크게 다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격려해 주며, 다윗처럼 다음과 같이 기도하게 한다(시 17:8).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소서."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솔로몬이 지시했던 것처럼 하도록 한다(잠 7:2). "내가 율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리라."

혹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나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네게 해를 입히는 자는 결국 그들 자신에게 가장 큰 해를 가한 것임이 판명되리라."

(4)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명의 명백한 증거가 되리라.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그의 교회의 보호자를 삼아, 교회에 주어진 약속들이 그분 안에서 "예"와 아멘이 되도록 하셨음을 알리라. 우리의 영적 원수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는 아버지께서 그를 보내셨고 그와 함께 하셨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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