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무엘하 히브리어 설교말씀 중에서 압살롬과 잇대의 믿음 비교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압살롬과 잇대를 구속사 관점에서 보면 압살롬은 다윗을 배반함으로 율법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잇대는 다윗과 함께하면서 충성했던 인물임으로 복음주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영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두 인물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고찰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하고 배반하는 율법주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잇대처럼 복음주의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압살롬과 잇대의 믿음 비교(삼하15:10; 19)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사람에게 배신당하면 마음이 힘들고 지치게 됩니다. 다윗도 이와 같은 상황에 있었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을 배신했기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우리는 오늘 압살롬과 잇대의 인물을 비교해 보면서 나의 신앙도 점검해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압살롬과 같은 신앙은 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압살롬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백성들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6절 바야아스 아브솰롬 카다바르 하제 레콜 이스라엘 아쎄르 야보우 라미쉐파트 엘 하멜렉크 바예가네브 아브솰롬 에트 레브 안셰 이스라엘
삼하 15:6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다윗은 다른 나라와의 전쟁과 다른 업무 때문에 재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 왕에게 재판을 요청하러 왔을 때 압살롬은 성문 앞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자신이 백성들의 마음에 흡족한 말을 하면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 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압살롬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해 보겠습니다.
‘압살롬’이라는 단어는 (아비살롬 53) 평화의 아버지라는 의미입니다. 압살롬의 이름은 평화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모적으로 백성들이 볼 때 신뢰가 가는 외모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기에 좋은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25절 우케아브솰롬 로 하야 이쉬 야페 베콜 이스라엘 레할렐 메오드 미카프 라겔로 베아드 코드코도 로 하야 보 뭄
삼하 14:25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압살롬의 외모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압살롬은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런 겉모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속마음은 달랐습니다. 다윗에게 가야 할 마음을 중간에서 도적질 했습니다. 현재 이런 자가 누구입니까? 가톨릭 교황은 평화의 아버지로 불려집니다. 겉모습은 온화하고 순진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우리는 압살롬과 같은 신앙을 해서는 안 됩니다. 겉으로는 믿음이 좋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주님을 배신하는 신앙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압살롬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백성이 좋아하는 말을 하면서 판결을 내렸습니다.
둘째, 압살롬은 헤브론에서 왕으로 선포했습니다.
10절 바이쉘라흐 아브솰롬 메라겔림 베콜 쉬브테 이스라엘 레모르 케쇼므아켐 에트 콜 하쇼파르 바아마르템 말라크 아브솰롬 베헤브론
삼하 15:10 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두루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
압살롬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도적질 한 후에 헤브론에서 왕으로 선포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었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알렸습니다. 현재 다윗이 왕으로 있는데도 배신하고 자신이 왕이 되려고 역모를 일으켰습니다. 헤브론은 어떤 곳입니까?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장소입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에서 하나님을 섬겼던 장소입니다. 이런 곳에서 압살롬이 스스로 왕이 되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압살롬과 같은 신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거룩한 의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압살롬은 아히도벨을 책사로 선택했습니다.
12절 바이쉘라흐 아브솰롬 에트 아히토펠 하길로니 요에츠 다비드 메이로 미길로 베조브호 에트 하제바힘 바예히 하케쎄르 암미츠 베하암 홀레크 바라브 에트 아브솰롬
삼하15:12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제사드릴 때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 다윗의 모사로 있었던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초청했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모사였지만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의 반역에 동참하게 됩니다. 아히도벨이 압살롬 편에 서니 백성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더 많이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반역에 동참하게 된 계기는 정확하게 성경에 나타나지 않지만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는 있습니다.
5절 베엘레 눌레두 로 비루솰라임 쉬므아 베쇼바브 베나탄 우쉘로모 아르바아 레바트 슈아 바트 암미엘
대상 3:5 예루살렘에서 그가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네 사람은 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의 소생이요
아히도벨은 다윗이 간음한 밧세바의 할아버지입니다. 아히도벨은 엘리암의 아버지입니다.
34절 엘리펠레트 벤 아하세바이 벤 하마아카티 엘리암 벤 아히토펠 하길로니
삼하 23:34 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벨렛과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아히도벨이 다윗의 책사였지만 자신의 손녀를 간음하고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살인한 것에 대해서 분노가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압살롬이 아히도벨을 불렀을 때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영적으로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압살롬 편이 아니라 다윗에게 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왕에서 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압살롬이나 아히도벨과 같은 신앙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압살롬과 같은 자와 함께하여 죽음을 맞이하면 안 됩니다. 압살롬과 같이 율법적인 신앙을 하는 사람은 시험에 걸려 있는 사람을 유혹하게 됩니다. 아히도벨과 같이 교회에서 시험에 걸려 있는 사람은 압살롬과 같은 자의 꼬임에 쉽게 넘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서 다윗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자 범죄인 간음과 살인죄 때문에 실망하고 배신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다윗과 함께하고 있었으며 그에 합당한 대가를 하나님께서 치르었습니다. 그중에 하나도 압살롬이 다윗을 배반하는 징계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압살롬과 같은 자와 함께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면 안 됩니다. 결국 아히도벨은 자신의 모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낙향하여 목숨을 끊게 됩니다. 압살롬과 같은 자와 함께 했던 아히도벨의 최후입니다. 다음은 다윗과 함께했던 잇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9절 바요메르 하멜렉크 엘 이타이 하기티 라마 텔레크 감 아타 이타누 슈브 베셰브 임 하멜렉크 키 노크리 아타 베감 골레 아타 리메코메카
삼하 15:19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다윗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말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압살롬과 함께하라고 말합니다. 잇대는 블레셋 가드 사람으로서 이방인입니다. 현재 압살롬의 역모가 일어나 다윗은 도망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잇대가 다윗과 함께하겠다고 말하니 너는 이방인으로서 정치적인 일에 휘말리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현재 압살롬의 반역이 거세지니 그에게 가야만이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것을 다윗이 말하고 있습니다.
‘잇대’라는 단어는 (잇타이 863) 친하기 쉬운, 붙임성이 있는이라는 뜻입니다. 잇대는 이방인이었지만 다윗과 함께하기를 마음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가까이 와서 다윗에게 충성하기를 맹세했습니다. 현재 다윗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만약 압살롬이 반역에 성공하면 잇대도 죽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잇대는 다윗에게 충성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럼 잇대와 같은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다른 사람이 모두 주님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주님과 함께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68절 아페크리데 운 아우토 시몬 페트로스 퀴리에 프로스 티나 아펠류소메다 헤마타 조에스 아이오니우 에케이스
요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오병이어 기적을 더 이상 베풀지 않겠다고 하니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사람들이 떠난 후에 주님이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물었더니 베드로가 대답하되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는데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라고 대답합니다. 이런 신앙이 잇대와 같은 신앙입니다. 주님이 제일 힘들 때 곁에서 함께하는 신앙이 잇대와 같은 신앙입니다. 잇대는 다윗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21절 바야안 이타이 에트 하멜렉크 바요마르 하이 아도나이 베헤 아도니 하멜렉크 키 임 비메콤 아쎄르 이흐예 솸 아도니 하멜렉크 임 레마베트 임 레하임 키 솸 이흐예 아브데카
삼하 15:21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다윗이 블레셋에서 망명한 잇대에게 너의 가족과 너는 떠나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처지가 압살롬에게 쫓기고있는 상황이라 너까지 떠돌아다니게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때 잇대가 왕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계심으로 맹세합니다.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곳에 있겠다고 맹세합니다.
19절 카이 프로셀돈 헤이스 그람마튜스 에이펜 아우토 디다스칼레 아콜루데소 소이 호푸 에안 아페르케
마 8: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와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합니다. 이 서기관은 이름도 없습니다. 그 당시 서기관들은 주님을 배척했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 서기관은 주님이 가는 길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겠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신앙이 잇대의 신앙입니다.
20절 카이 레게이 아우토 호 이에수스 하이 알로페케스 폴레우스 에쿠신 카이 타 페테이나 투 우라누 카타스케노세이스 호 데 휘오스 투 안드로푸 우크 에케이 푸 텐 케팔렌 클리네
마 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주님은 서기관의 고백을 듣고 말합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서기관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주님을 따르는 일이 쉬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네가 나를 따르겠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는 얻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압살롬과 잇대의 신앙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이 아버지인데도 배신하고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려고 했습니다. 이런 신앙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율법주의 신앙을 의미합니다. 압살롬은 주님을 배척하고 자신이 주님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잇대는 이방인이지만 다윗에게 충성 맹세하고 있습니다. 잇대와 같은 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께 충성 맹세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는 어려움이 있고 힘들어도 잇대와 같이 주님께 충성하면 나중에 잇대가 다윗의 군대장관이 된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 큰 복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압살롬의 신앙을 배척하고 잇대의 신앙을 가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무엘상 히브리어 설교말씀] 구약 사울 왕과 신약 사울(바울) 비교(삼상 10:1; 행 9: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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