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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원어성경 설교말씀] 천국의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가노라(빌 3:12-16)

르호봇 2022. 3. 30.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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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3장에서는 바울이 구원받은 것으로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부름의 상을 따라간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주실 천국의 부름의 상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이 이 세상에서 끝이라면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지만 우리의 삶이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부름의 상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주실 상을 생각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가노라(빌 3:12-16)

 

그리스도인들이 구원과 상급에 대해서 잘 구별을 못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을 행위로 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율법주의 신앙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기를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 나라의 상을 위해서 달려가게 됩니다. 상은 행위로 받는 것입니다. 구원과 상은 분명히 차별되어 있습니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행위도 없으면 구원은 있지만 천국에서 받을 상은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예로 들자면 우편 강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즉시 구원은 받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을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행위의 삶을 산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편 강도는 믿음으로 구원은 받았지만 하나님께 받을 상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구원과 상을 구분하여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거듭남의 체험을 하고 나서 그다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체험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을 이 땅에서 준비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세상에서 육체를 쓰고 사는 동안에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누가 얼마나 많이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천국에서의 삶은 달라지게 됩니다.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이 세상의 것에 관심을 가지고 땅의 것만 구하고 있으면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것을 준비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머리로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천국에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의 육신이 이 세상에 살고 있으니 항상 육신에 져서 땅의 것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육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땅의 삶이 아니라 하늘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성도들이 많이 오해하는 구절이 오늘 본문의 구절입니다. 목사들도 이 구절을 구원에 비교하여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원에 관한 구절이 아니라 성화에 관한 구절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화는 상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것을 구원과 연관 짓게 되면 죽을 때까지도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구원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구원받고 난 이후에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라는 것은 내가 이미 받은 상이 있지만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받을 상은 이 세상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가서 받게 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충성할 때 받을 상을 잡으려고 달려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달려가노라: 헬라어로는 디오코 1377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단수, 1인칭) 뒤쫓다, 추구하다, 박해를 받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주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는 것은 구원받고 난 이후의 삶은 박해받고 고통당할 수밖에 없는 삶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에 그 상을 바라보면서 현재 당하는 고난과 핍박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에게 고난이 와도 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이 고난을 이겨내면 큰 결과의 복이 있다는 것을 알 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런 소망이 없으면 사람이 포기하고 끝내버립니다. 유대인들이 포로수용소에서 고난을 당할 때 우리가 반드시 여기에서 나갈 때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소망을 보았기 때문에 고난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반면에 우리는 여기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삶을 포기하고 낙심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힘들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고난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같이 천국에 대한 삶을 생각하고 그 나라에서는 주님과 영원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하게 됩니다.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사도 바울은 아직 내가 잡을 줄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면서 율법주의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지만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열심을 냈던 과거의 모든 것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사명과 받아야 할 상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잡으려고: 헬라어로는 에페크테이노 1901 동사, 분사, 현재, 중수디포, 주격, 남성, 단수, 1인칭) 손을 내밀다, 잡아당기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과거의 모든 일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자기에게 닥칠 하나님의 일들을 자신의 것으로 잡아당기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오는 일을 그냥 지나칠 수가 있는데 바울은 나에게 오는 환난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대로 받아서 앞으로 달려가겠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가난의 문제, 영적인 문제, 직장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등 이런 문제들을 회피할 수 있지만 이런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문제를 주셨는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정진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지나온 과거는 뒤로하고 앞으로 나에게 닥칠 문제들과 앞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실 일들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나의 것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일을 맡겼어도 내가 그 일을 붙잡지 않고 회피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주신 일을 잡아당겨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럼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내 것으로 만들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은 마지막 때에 받으면 됩니다.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도 바울은 구원을 향하여 달려간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상을 푯대로 삼고 열심히 믿음 생활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었던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경기장 안에 들어온 경주자입니다. 모든 사람이 경기장 안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마라톤을 하는 운동선수가 달리는 목적은 마지막 월계관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열심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달리는 목적도 하나님께 상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상을 위해서 열심히 달리는 것이냐고 말하지만 사도 바울도 부름의 상을 푯대로 삼고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인생에서 환난이 오고 매 맞음이 와도 이겨낼 수가 있었습니다. (푯대: 헬라어로는 스코포스 4649) 표적, 감시자, 감독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표적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독자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인생의 감독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고 열심히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럼 우리 인생의 푯대는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의 푯대였습니다. 자신을 구원하시고 감독하시는 주님 안에서 주님을 푯대로 삼고 하나님이 주실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렸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나의 인생의 감독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운동선수는 항상 감독이 있습니다. 감독은 운동선수들의 모든 것을 코치하면서 길을 인도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감독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운동선수가 감독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감독으로부터 출전 기회를 박탈당하면 실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시합에 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주님을 푯대로 삼고 감독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나의 인생의 감독이 되시는 주님께 묻고 인도하는 대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주실 부름의 상이 크다는 것을 이 시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빌3: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사도 바울은 경기장 안에서 뛰는 운동선수처럼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신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온전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름의 상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만족했어!라고 하는 사람은 믿음 생활을 소홀히 하여 하나님께 충성된 삶을 멈출 수가 있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성화의 삶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평생 주님을 닮아가면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과정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주님을 닮아가느냐에 따라서 상급의 차이도 있게 됩니다.

 

빌3: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구원은 일방적인 은혜라면 상을 받는 성화는 쌍방적인 은혜입니다. 이것은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열심히 주님을 위해서 뛰고 달린 사람은 많은 상을 받게 되는 것이고 똑같이 경기장 안에 들어왔는데도 열심히 뛰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 받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대로 열심히 뛰면 됩니다. 다른 사람의 상을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상만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달리면 됩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주실 부름의 상을 바라보면서 열심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면서 봉사하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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