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22장 히브리어 설교말씀 중에서 천국의 혼인잔치 비유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혼인잔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보면 핵심이 전반부나 후반부 구절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혼인잔치 비유의 핵심은 14절에 있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천국은 아무나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선택을 받았습니다. 성도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셔서 천국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오늘 천국의 혼인잔치 비유를 통해서 나는 청함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국의 혼인잔치 비유”(마 22:1-14)
마 22: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 22: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 22: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마 22: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마 22:5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마 22: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마 22: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마 22: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마 22: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마 22: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마 22: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마 22: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 하거늘
마 22: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마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천국복음을 가르치고 있을 때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나와서 말하기를 네가 무슨 권위로 이렇게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또한 누가 이런 권위를 주었느냐고 말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아니면 사람으로부터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들이 대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주님께서는 맏아들과 작은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포도원의 농부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대답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이 말씀을 자신들에게 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화를 내면서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따르던 백성들이 무서워서 잡지 못했습니다.
그다음에 나오는 비유의 말씀이 바로 혼인잔치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임금이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준비하고 많은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러나 초청을 받은 자들은 오기를 꺼려하고 자신의 일을 위하여 모두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임금은 초청한 사람들에게 군대를 보내 진멸해 버렸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 청한 사람은 합당치 아니하니 길에 나가 모든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손님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임금의 눈에 들어왔고 이 사람은 혼인잔치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하나님께서 먼저 혼인잔치에 초청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초청장을 보낸 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일에 빠져 살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왜 보내주셨는지를 깨닫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세리와 창녀와 어부들과 병자들은 하나님의 혼인잔치에 들어오지도 못할 자였습니다. 초청받지도 못한 자들인데 이들에게 초청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 우리를 혼인잔치에 초청을 하셨고 우리는 초청장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 가운데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는 혼인잔치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혼인잔치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셨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이 항상 준비되어 있고 그분과 만나는 시간이 바로 혼인잔치의 예배입니다. 우리는 신부입니다. 하나님은 신랑을 위하여 신부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바로 복음을 통하여 초청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혼인잔치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먼저는 하나님의 혼인잔치의 초청에 기뻐함이 있어야 합니다.
마 22: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우리가 신약 히브리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더 분별해 보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임금과 같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것과 같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신부인 우리에게 무엇을 준비하신 것일까요?
‘육체’라는 단어는 (바사르 1320) 살, 육체,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בשר(바사르 1319) 기쁜 소식을 전하다, 선포하다, 공포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어떤 임금이 아들을 위해 준비한 혼인예식에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날이며 임금이 이 날에 기분이 좋아서 자신의 아들이 장가가는 날이라는 것을 공포하고 선포하는 날입니다. 이 날에 많은 하객들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초청장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십자가에 달릴 것을 준비하고 죄인들을 불러 신랑과 하나가 되게 하여 구원의 은혜를 주기 위하여 혼인예식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복음은 무엇입니까? 대제사장이 탄생이 될 때 복음이 됩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이 되어 만백성에게 알리게 됩니다. 다음은 왕이 즉위를 할 때 복음이 됩니다. 셋째는 전쟁에서 승리할 때가 복음이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 세 가지를 모두 이루어 주셨습니다. 대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셨고 만왕의 왕이 되셨으며 사탄의 머리를 짓밟아 주시므로 승리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육체가 찢어짐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고 그 안에서 복음이 나왔습니다. 나를 살리는 기쁜 소식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라는 단어는 (담 1818) 피, 피 값, 죄,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דמם(다맘 1826) 끊어지다, 멸절되다, 평온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혼인예식에는 반드시 피를 준비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자신의 아들의 피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피를 준비하신 것은 죄인들의 피 값으로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미 생명이 죽었기 때문에 대신 피를 흘리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피를 통하여 혼인예식에 들어온 자들이 모든 죄가 끊어져서 사라지고 멸망당할 자들이 평안의 삶을 살아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임금이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준비했다는 것은 바로 아들의 육체와 피를 준비해 놓고 죄인들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3절 카이 아페스테일렌 투스 둘루스 아우투 칼레사이 투스 케클레메누스 에이스 투스 가무스 카이 우크 에델론 엘데인
마 22: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이렇게 임금이 혼인잔치를 준비해 놓고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임금의 특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아무나 초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초청받은 사람들은 능력과 실력이 있고 존경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 자들을 초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혼인잔치에 오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임금의 초청에 기쁨이 없던 자들입니다.
‘청한’이라는 단어는 (칼레오 2564 VPRPAMP 동사 분사 완료 수동태 목적격 남성 복수) 부르다, 초대하다, 청함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임금은 혼인잔치를 준비해 놓고 자신의 마음에 든 사람들을 초대하기 위하여 종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임금이 보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분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임금이 심사숙고하여 자신이 아는 사람을 초청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불러서 아들의 혼인잔치를 즐기면서 함께 기쁨을 나누자고 청했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임금이 자신의 처소에서 마음에 드는 자들을 향하여 종들을 보내서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먼저 왕의 마음 가운데 초청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자들입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현재 혼인잔치에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왕의 초청이 없으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자들입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왕이 이 사람들을 초청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목적격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아들의 혼인예식에 참여하여 기쁘고 즐겁게 축하해 주라는 목적에서 초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도 이렇게 복음으로 초청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기를 싫어하거늘’이라는 단어는 (델로 2309 VIIAP3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복수 3인칭) 원하다, 바라다, 기뻐하다, 라는 뜻입니다. 임금이 종들을 보내 초청한 사람들은 임금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가기를 원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았으며 기뻐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이유가 직설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특별하게 생각하여 초청을 했는데도 이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한 것은 임금이 생각하여 초청을 했는데도 그들은 계속해서 임금이 준비해 놓은 혼인잔치에 가기를 싫어했다는 말입니다. 능동태는 그들이 실제로 자신 스스로 임금의 초청을 거부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나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이런 자와 같은 신앙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십자가 복음을 준비해 놓고 혼인잔치에 신부인 나를 초청해 주셨는데 주일날 예배에 오기를 싫어하고 예배의 혼인잔치가 기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주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일 예배가 기다려지고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며 마음이 설레는 사람은 주님의 온전한 신부인 것입니다.
4절 팔린 아페스테일렌 알루스 둘루스 레곤 에이파테 토이스 케클레메노이스 이두 토 아리스톤 무 헤토이마사 호이 타우로이 무 카이 타 시티스타 테뒤메나 카이 판타 헤토이마 듀테 에이스 투스 가무스
마 22: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임금이 생각하기를 초청이 소홀하다고 생각하여 오지 않는가? 하여 다른 종들을 보내 정중히 다시 초청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찬을 준비했는데 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 모든 혼인잔치를 준비하였으니 오라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많이 있으니 와서 임금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자고 다시 한번 초청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초청을 해주시는데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이 신부의 자격으로 오늘 이 시간 올 수 있도록 초청해 주신 것입니다. 일단 혼인예식에 들어오면 먹을 것이 풍성합니다.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와 피 흘리신 복음이 풍성하여 영혼이 살이 찌며 마음이 평안함을 찾고 항상 기쁘고 즐겁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님을 통하여 주신 것입니다.
살진 짐승을 잡았다고 했는데 뒤오 2380 동사입니다. 문법은 동사 분사 완료 수동태 주격 중성 복수입니다. 분사를 사용한 것은 임금이 자신이 직접 혼인잔치를 배설하면서 살진 짐승을 잡아서 준비했다는 의미입니다. 완료 시제는 살진 짐승을 잡아 손님이 왔을 때 음식이 부족하지 않도록 완벽하게 짐승을 잡아서 준비했다는 말입니다. 수동태는 혼인잔치를 위해서 손님을 초청했으니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서 살진 짐승을 안 잡을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도 나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수동태로 십자가에서 죽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아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혼인잔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문법을 통해서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자기 자신의 일에 바빠서는 안 됩니다.
5절 호이 데 아멜레산테스 아펠돈 호 멘 에이스 톤 이디온 아그론 호 데 에이스 텐 엠포리안 아우투
마 22:5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임금이 두 번이나 종들을 보내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고 있습니다. 기뻐하지도 않고 고맙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종들에게 임금의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있습니다.
‘돌아보지도 않고’라는 단어는 (아멜레오 272 VPAANMP 동사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남성 복수) 가볍게 여기다, 등한히 여기다, 라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의 문제에 쌓여 열심히 자기 밭으로 자기 사업차로 갔던 사람들은 임금의 초청을 가볍게 생각하여 멸시하고 등한히 여긴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분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시제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임금의 초청에도 관심이 없고 혼인잔치에 가지 않으려고 작정했다는 의미입니다. 능동태는 초청을 받은 자들이 직접 응하지 않고 자기 일에 바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사람들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일에 혼인예식에 초청을 했는데도 자신의 취미생활과 사업과 바쁜 세상의 일정 때문에 하나님의 초청을 가볍게 생각하고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미 이렇게 임금의 초청을 거역하고 자신의 일에 바쁘게 살아갈 것이 계획이 되어 있고 이것이 현재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들 스스로 임금의 말씀을 우습게 여긴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 세상에도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자들은 절대 하나님의 혼인잔치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매 주일마다 혼인예식에 신부인 나를 초청해 주시고 있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우습게 여기면 안 됩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혼인잔치에 참여하여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합니다.
셋째, 혼인 예복을 입고 들어와야 합니다.
11절 에이셀돈 데 호 바실류스 데아사스다이 투스 아나케이메누스 에이덴 에케이 안드로폰 우크 엔데뒤메논 엔뒤마 가무
마 22: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임금이 손님들을 보려고 혼인잔치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임금이 보고 있습니다. 이때 당시의 혼인잔치의 관습에는 초청한 사람이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복을 준비하여 주는 것이 전통입니다. 먼저 초청했던 사람들은 거부하여 돌아갔지만 이 사람들은 거리에서 무작위로 데려왔기 때문에 반드시 혼인 예복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혼인 예복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지 않고 혼인잔치에 들어온 것입니다.
‘예복을’이라는 단어는 בגד(베게드 899) 의복, 예복,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בגד(바가드 898) 배반하다, 부정하게 행동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임금은 혼인예식에 들어오는 자들을 위해 예복을 준비해 놓고 입으라고 했습니다. 이 잔치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모두 임금이 준비해준 혼인 예복을 입었는데 유독 한 사람은 임금이 준비해 주신 예복을 입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임금 앞에 자신의 의로 나가 부정하게 행동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임금의 말에 배반하고 거역하여 잔치를 망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임금의 마음을 화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임금은 예복을 입지 않은 자를 손과 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데 내던지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의 옷을 입지 않고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의 몸과 피를 준비해 놓고 신부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영원히 주리지 않으며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시간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혼인잔치에 초청받아 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의로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행동입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혼인 예복을 입고 저와 여러분들은 잔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입지’라는 단어는 (엔뒤오 1746 VPRMAMS 동사 분사 완료 중간태 목적격 남성 단수) 옷을 입히다, 옷을 입다, 라는 뜻입니다. 임금은 종들에게 준비한 예복을 입히도록 명령을 하고 아들의 혼인잔치에 들어오는 자들에게 십자가 복음의 옷을 입혀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명만 입지를 않은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주일 예배에 참석하면서 십자가 의의 옷을 주님께서 입혀주셨습니다. 이 옷을 입지 않으면 신부들은 쫓겨나야 합니다.
분사를 사용한 것은 이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아들의 혼인잔치에서 입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임금을 향하여 모욕하고 수치를 준 사람입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한 것은 이미 예복은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이 사람은 입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예복을 이미 완벽하게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것을 입지 않고 자신의 행위로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면 결국 쫓겨나게 됩니다. 그것이 현재 혼인잔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간태는 자신이 행동한 것으로 인해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혼인 예복을 준비해 주었는데 그것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쫓겨나게 되는 상황이 자기 자신에게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 선택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십자가의 옷을 거부하는 자들은 절대 천국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혼인잔치의 비유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먼저 초청을 받은 자들이 있고 택함 받은 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먼저 초청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건을 거부하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기를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혼인잔치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의로 나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자기의 의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의로 혼인잔치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예복을 입고 들어왔기 때문에 택함 받은 자입니다. 먼저 초청한 자들은 실력과 능력이 있는 자들이었지만 결국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의를 무시하여 혼인잔치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뒤에 초청을 받은 자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의 옷을 입고 들어와 영원히 신랑 되시는 주님과 신부인 우리가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 매 주일예배가 혼인잔치의 예배가 이루어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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