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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2장 헬라어 설교말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골 2:8-15)

르호봇 2021. 8. 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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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골로새서 2장 헬라어 설교말씀 중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선택받은 자들의 모든 죄를 대속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의에 이르렀으니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 범죄를 짓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죄악들을 모두 끊어주셨기 때문에 나는 주님의 뜻대로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골 2:8-15)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십자가는 승리의 상징입니다”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고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에서 고난당하시고 결국 십자가에서 매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이 바로 나의 고난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나왔다면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생각에만 멈추어 있다면 그 신앙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과 고난이 바로 나와 연합이 될 때에 그 신앙이 앞으로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미국에 가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각을 합니다. 비행기로 갈까! 아니면 배로 갈까! 많이 생각만 합니다. 비행기는 시간이 단축되고 그런데 가격이 비싸고 배는 너무나 시간이 길고 배 멀미도 나고 안 좋은 것 같아! 혼자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장점만 생각하고 비행기도 타지 않고, 배도 타지 않고 집에서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평생 미국에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비행기를 타든지, 배를 타야만 미국에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천국 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간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배를 타듯이, 비행기를 타듯이 주님과 연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가 믿음으로 천국 가는 것입니다. 평생 교회 나왔다고 해도 주님과의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천국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주님과의 연합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연합체라는 것은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생각과,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주님과 함께 고난 받았고, 주님과 함께 죽었고, 주님과 함께 살아났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연합이고 한 몸을 이룬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고난의 상징입니까? 피의 상징입니까? 이단인 하나님의 교회는 십자가를 세우지 않습니다. 우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우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예수님이 승리하신 승리의 상징입니다. 십자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영원히 형벌받아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아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승리했을까요?

 

1. 세상의 지식에서 승리했습니다.

8절 블레페테 메 티스 휘마스 에스타이 호 쉴라고곤 디아 테스 필로소피아스 카이 케네스 아파테스 카타 텐 파라도신 톤 안드로폰 카타 타 스토이케이아 투 코스무 카이 우 카타 크리스톤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초등학문’이라는 단어는 (스토이케이온 4747 NANP 명사 목적격 중성 복수) 원리, 기초, 요소, 라는 뜻입니다. 초등학문은 세상의 원리를 나타내며 이러한 기초로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충족시켜 주는 것입니다. 초등학문은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지식과 지혜로 하나님을 깨달으려고 하게 합니다. 결국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믿지 못하게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많은 과학과 문명이 발달되어 세상 지식이 충만한 시대입니다. 철학과 문화가 난무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보다 세상을 아는 지식이 우선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을 전해 주어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거절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세상의 전통을 따라가지 않고 헛된 속임수, 무당의 점을 따라가지 않고, 철학의 지식을 따라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의 지혜를 따라가는 것이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초등학문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지식이 충만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망했습니까?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지 못했기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인생과 영혼이 왜 망가집니까?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알아 가는데 충만해져야 합니다.

 

2. 성령의 충만함으로 승리하셨습니다.

9절 호티 엔 아우토 카토이케이 판 토 플레로마 테스 데오테토스 소마티코스

10절 카이 에스테 엔 아우토 페플레로메노이 호스 에스틴 헤 케팔레 파세스 아르케스 카이 엑수시아스

2:9-10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충만하여졌으니’라는 단어는 (플레로오 4137 VPRPNMP2 동사 분사 완료 수동태 주격 남성 복수 2인칭) 채우다, 충만하다, 가득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고난당하시고 인간의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령의 충만함이 예수님의 육체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충만함이 바로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충만하게 채워졌으며 이 충만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시인했을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아무나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만 됩니다. 완전한 성령 충만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주님을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없으면,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가 될 수가 없고, 우리의 머리 되시는 주님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에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인도되어 살기를 원합니다. 이제부터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 되시고 성령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성령님께 먼저 물어보는 것입니다. 문제를 털어놓고 앞길을 여쭈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성령님의 강한 임재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죽음에서 승리하셨습니다.

11절 엔 호 카이 페리에트메데테 페리토메 아케이로포이에토 엔 테 아페크뒤세이 투 소마토스 톤 하마르티온 테스 사르코스 엔 테 페리토메 투 크리스투

12절 쉰타펜테스 아우토 엔 토 밥티스마티 엔 호 카이 쉬네게르데테 디아 테스 피스테오스 테스 에네르게이아스 투 데우 투 에게이란토스 아우톤 에크 톤 네크론

2:11-12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라는 단어는 (쉬네게이로 4891 VIAPP2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복수 2인칭) 함께 일으키다, 함께 살리다, 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어쩌면 제일 두려운 것이 죽음일지도 모릅니다. 강한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할 때는 죽음에 대해서 초연해집니다. 그런데 막상 죽음이 나와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고 나에게 엄습할 때는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내가 살아나는 사건이 실제적으로 일어나며 이미 이것은 만세전에 선택된 백성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살아나는 것은 나의 능력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예수님의 공로만으로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인간이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음에서 승리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신령한 몸으로 부활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부활의 몸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나의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 나는 부활되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육의 몸을 벗은 것입니다. 죄악의 몸을 벗고 이제는 주님의 신령한 몸을 덮어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을 이긴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몸으로 탄생되는 것입니다. 굼벵이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몸인 매미가 되는 것입니다. 애벌레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나비로 탄생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의 새로운 몸으로 뒤집어쓰고 새로운 몸으로 부활되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습니다. 세례는 죽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또한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함께 죽음에서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함과 동시에 우리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탄생된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과 죽고 주님과 함께 살아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천국의 삶을 누리면서 살기를 축원합니다.

 

4. 죄악에서 승리하셨습니다.

13절 카이 휘마스 네크루스 온타스 엔 토이스 파랍토마신 카이 테 아크로뷔스티아 테스 사르코스 휘몬 쉬네조오포이에센 쉰 아우토 카리사메노스 헤민 판타 타 파랍토마타

14절 엑살레입사스 토 카드 헤몬 케이로그라폰 토이스 도그마신 호 엔 휘페난티온 헤민 카이 아우토 에르켄 에크 투 메수 프로셀로사스 아우토 토 스타우로

15절 아페크뒤사메노스 타스 아르카스 카이 타스 엑수시아스 에데이그마티센 엔 파르레시아 드리암뷰사스 아우투스 엔 아우토

2:13-15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이기셨느니라’라는 단어는 (드리암뷰오 2358 VPAANMS 동사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남성 단수) 개선행진에서 누군가를 무엇을 끌고 가다, 개선하게 하다, 공개적인 행진에서 나타내 보이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죄악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인간의 죄악 된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악에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은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나를 개선행진에서 끌고 가서 죄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이미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준비하신 사건이며 주님은 자발적으로 골고다에 올라가셔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범죄 하여 살 수가 없는 인생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죄를 피해 갈 자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육체의 무 할례로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살리셨고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나는 평생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인생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나의 죄를 사함 받았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사건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율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율법을 어기면 바로 죽음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불리하게 되었던 율법을 지워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하여 주셨습니다. 이제는 구약의 율법이 올무가 된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서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책임감과 의무감에서 구약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자유 함을 갖고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어떤 큰 부자인 남자가 있었습니다. 이 남자는 결혼할 시기가 되어 신부 감을 공개적으로 청혼을 하는 것입니다. 자격은 아무것도 필요 없고 자기가 말하는 데로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여자가 이것을 보고 자신은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시키는 데로는 잘할 것 같아서 청혼을 했는데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여자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가난하게 살았는데 부잣집에 시집왔으니 모든 것을 호화찬란하게 누리면서 살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여자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남편이 시킨 일을 제대로 못하면 매일같이 두들겨 패는 것입니다. 새벽 6시에 자신은 밥을 먹어야 되니 밥상을 차리라고 합니다. 이것도 매일같이 그런데 하루정도 피곤하여 밥상을 차리지 못하면 두들겨 패는 것입니다. 결국 이 여자는 이 남편과 살지 못하고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것을 누리면서 산 것 같았지만 결국 그것은 복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 여자가 재혼을 하게 되었는데 남편을 잘 만났습니다. 이 남편도 부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남편은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고 자신만 사랑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모두가 당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남편도 사업을 하기 때문에 새벽같이 나갑니다. 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 주고 잘 대해 줍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에 고마워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새벽에 나가는 남편을 위해서 맛있게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을 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힘들게 이렇게 음식을 준비했어요?라고 말하면서 고맙게 음식을 먹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너무나 피곤해서 음식을 차려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남편은 아내가 피곤해서 그렇구나!라고 생각하고 출근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 아내는 남편의 그런 마음이 고마워서 자동적으로 일어나 남편을 위해 매일같이 식사를 준비해 주는 것입니다.

 

과거의 남편은 무서워서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매일같이 식사를 준비해 주었는데 지금의 남편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챙겨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율법과 사랑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율법적인 신앙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사랑의 신앙은 힘들지 않고 오래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율법과 이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과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예배도 책임과 의무감으로는 기쁨이 없습니다. 얼굴에 근심만 가득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드리는 예배는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제 두려움 없이 세상으로 달려가십시오. 세상을 통치하는 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시고 십자가에서 승리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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