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무엘하 16장 히브리어 설교말씀 중에서 다윗과 시므이 저주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압살롬이 반역을 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어쩔 수 없이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도망을 칠 때 바후림에 도착하게 됩니다. 거기서 사울의 친족인 시므이를 만나게 됩니다.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하게 됩니다. 현재 자신의 아들 압살롬에게 도망을 치고 있는데 그것도 계속해서 쫓아오면서 저주하고 있습니다. 이때 다윗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괴로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구속사 관점에서 이 관계를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저주했던 유대인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윗과 시므이 저주(삼하 16:5-8)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 다윗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버리고 도망치다가 므비보셋의 종 시바를 만나게 됩니다. 시바는 도망치는 다윗에게 먹을 양식을 가지고 와서 대접합니다. 진짜 자기편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힘들고 어려워졌을 때 어떻게 행동을 하느냐!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지만 내가 권세가 있고 물질이 있을 때 모여있는 사람들은 내가 힘들면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진정 곁에 함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나와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은 시므이라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다윗이 압살롬에 의해서 도망치자 저주하면서 쫓아왔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인데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시므이와 같은 자들로부터 저주를 받았습니다. 주님은 비난받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대신 저주받고 죽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시므이의 인물을 보면서 나의 신앙생활을 생각해야 합니다. 올바른 믿음이 없으면 나도 예수 그리스도를 시므이처럼 저주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힘들고 어려울 때 곁에서 배신하지 않고 함께 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5절 우바 하멜렉크 다비드 아드 바후림 베힌네 미솸 이쉬 요체 미미쉐파하트 베이트 솨울 우쉐모 쉬므이 벤 게라 요체 야초 우메칼렐
삼하 16:5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다윗이 바후림이라는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 사울의 친족인 게라의 아들이며 시므이가 나와서 다윗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바후림은 시므이의 고향으로서 사울의 가문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다윗이 싫었습니다. 사울 가문은 베냐민 지파이고 다윗은 유다 지파이기 때문에 시므이는 싫었습니다. 태생 자체가 다릅니다. (게라: 게라 1617 돌아다니다, 소멸하다) 시므이는 자신의 아버지 게라로부터 온전한 신앙을 전수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름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떠돌아다니는 신앙을 배웠습니다. 정착하여 온전한 신앙을 배워야 하는데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니 제대로 된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니 결국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시므이가 온전한 신앙을 배웠다면 다윗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는 것을 인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을 온전하게 아버지로부터 배우지 못하니 인간이 원해서 세운 자신의 가문에서 나온 사울 왕을 추대하고 믿었습니다. 육적으로는 자신의 가문에서 나왔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은 사울 왕을 폐위시키고 다윗 왕을 세웠습니다. 시므이도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가 압살롬에 의해서 다윗이 쫓겨나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여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신앙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사울 왕은 인간이 요구하여 세운 왕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정욕적인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배도 자신 마음대로 드렸고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기 위해서 기념비도 세웠습니다. 시므이는 이런 자의 신앙을 따라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울 왕을 버리고 다윗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럼 다윗 왕을 인정하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왕이라는 것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율법주의자는 사울 왕과 같은 인간의 본성을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인간을 구원자로 믿고 가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이며 만왕의 왕이라는 것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이런 신앙이 정착된 신앙입니다.
우리가 시므이의 이름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시므이: 쉬므이 8096 들음) 시므이가 다윗 왕을 쫓아다니면서 저주했던 것을 하나님은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시므이를 저주하게 됩니다. 시므이는 다윗이 죽고 난 후에 솔로몬에게 죽게 됩니다. 지금 당장은 저주를 모면하여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흘러 반드시 자신 생전에 하나님이 갚아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아닌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은 들으시고 때가 되매 저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아닌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자들이 기회를 보면서 시므이처럼 주님을 배반하고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모욕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두 번 십자가에 못 박으면 안 됩니다. 시므이도 다윗 왕의 통치를 받으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런 자가 다윗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6절 바예사켈 바아바님 에트 다비드 베에트 콜 아브데 하멜렉크 다비드 베콜 하암 베콜 하기보림 미미노 우미세몰로
삼하 16:6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는 다윗에게만 저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 왕을 따르던 신하들에게 돌을 던지면서 저주하고 있습니다. 시므이는 구원받지 못한 자의 표상입니다. 사울의 신앙을 따라가면서 자신만 높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던 자입니다. 이런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다윗과 그의 신하들을 저주합니다. 지금도 똑같습니다. 교회 안에서 시므이와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은 흔들리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를 핍박합니다. 저주하고 돌을 던지면서 괴롭힙니다. 그것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왔을 때 저주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남의 약점을 파고들어 후벼대면서 고통을 줍니다. 다른 사람에게 약점을 들추어내어 수치를 줍니다. 이런 자의 신앙이 시므이와 같은 신앙입니다. 우리 주님도 시므이와 같은 유대인들에게 이런 모욕과 수치를 받았습니다. 주님을 따르던 성도들이 핍박받고 순교했습니다. 스데반도 같은 민족에게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시므이의 신앙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7절 베코 아마르 쉬므이 베칼렐로 체 체 이쉬 하다밈 베이쉬 하벨리야알
삼하 16: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시므이가 저주하는데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습니다.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떠나가라고 합니다. 지금 다윗의 마음은 비통합니다. 자신의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가는 신세인데 그 틈을 타서 시므이는 사악한 자라고 말합니다. 다윗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악한 자여: 벨리야알 1100 무가치함, 무익함, 파멸) 시므이는 다윗에게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저주합니다. 파멸될 자이며 더 이상 쓸모없는 왕이라고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유대인의 왕으로 오셔서 구원하려고 했는데 그들은 주님을 무가치한 자로 여기고 너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냐고 떠들어댔습니다.
40절 카이 레곤테스 호 카탈뤼온 톤 나온 카이 엔 트리신 헤메라이스 오이코도몬 소손 세아우톤 에이 휘오스 에이 투 데우
마 27: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희롱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너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합니다. 시므이와 같이 주님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42절 알루스 에소센 헤아우톤 우 뒤나타이 소사이 에이 바실류스 이스라엘 에스틴 카타바토 뉜 아포 투 스타우루 카이 피스튜소멘 아우토
마 27: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예수 그리스도가 남은 구원했지만 자기는 구원하지 못한다고 조롱합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인데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자신들이 믿겠다고 합니다. 다윗이 이미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것처럼 주님은 이미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시므이처럼 율법에 빠진 자들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시므이도 다윗이 힘을 잃고 압살롬에게 쫓겨갈 때 저주를 퍼붓는 것처럼 유대인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강성할 때는 건들지도 못하다가 하나님의 때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니 그때서 저주하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주님은 사악한 자고 구원하지 못하는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시켜버렸습니다. 이런 자의 신앙이 시므이와 같은 자입니다. 믿음이 아닌 자신의 거룩한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입니다.
8절 헤쉬브 알레이카 아도나이 콜 데메 베이트 솨울 아쎄르 말라케타 타흐토 바이텐 아도나이 에트 하멜루카 베야드 아브솰롬 베네카 베힌네카 베라아테카 키 이쉬 다밈 아타
삼하 16: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시므이가 다윗에게 저주를 퍼붓는데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너에게 돌렸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자신의 화난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면서 베냐민 지파의 위세가 떨어졌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권세를 잃어버리니 주님을 욕하고 떠나게 됩니다. 시므이는 여호와께서 나라를 너의 아들 압살롬에게 넘겨주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왕국을 압살롬에게 넘기지 않았습니다. 시므이와 같은 신앙은 육적인 신앙입니다.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만 보는 신앙입니다. 이런 자의 신앙은 자신의 감정에 치우친 신앙입니다. 지금 좋으면 구원받은 것처럼 느껴지고 지금 슬프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구원받지 못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시므이도 지금 다윗이 쫓겨가니 처량 맞고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도 주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니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부활되어 승리하셨습니다. 압살롬과 같은 자들을 무찔러주셨습니다. 시므이도 주님의 부활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다윗의 손을 들어 압살롬을 이기게 한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부활 신앙이 없으면 하늘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시므이처럼 현재에만 국한되어 사는 인생은 결국 이 세상만 보다가 죽어서 영원한 지옥의 불 못에 떨어지게 됩니다. 시므이의 신앙은 땅에 것만 구하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것을 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가면서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시므이의 저주를 받으면서 그를 용서하고 있습니다. 신하들은 시므이를 죽이자고 제안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들도 자신의 생명을 죽이려고 하는데 베냐민 사람인 시므이는 더 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자로 선택한 가룟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은 30에 팔았는데 유대인들은 더 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34절 호 데 이에수스 엘레겐 파테르 아페스 아우토이스 우 가르 오이다신 티 포이우신 디아메리조메노이 데 타 히마티아 아우투 에발론 클레론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있을 때 자신을 조롱하던 자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시므이를 용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잠시 잠깐의 용서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시므이는 원죄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용서를 통하여 자 범죄만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솔로몬의 명을 어기고 죽게 됩니다. 결국 선택받지 못한 자의 말로는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므이와 같은 신앙은 율법주의자의 삶으로서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이 세상에서 기득권이 사라지면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욕하고 수치를 줍니다. 사울 왕이 통치했을 때는 세상에서 누렸던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친족이기 때문에 많은 권력을 가지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등장하면서 이런 기득권이 사라지자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기는 약점을 잡고 저주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주의자들이 성도를 핍박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득권이 많이 사라지면 주님과 성도를 핍박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다가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 환경이 열악해질 때 시므이와 같은 신앙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주님의 은혜로 살았는데 지금 힘들어졌다고 주님을 배반하고 저주하는 이런 행위는 배은망덕한 행동입니다. 믿음으로 만이 구원이 있다고 하더니 육적인 어려움이 오니 행위 구원으로 돌아가는 이런 신앙이 시므이와 같은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의 신앙을 모두 들으시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자의 마지막은 지옥의 심판이라는 것을 꼭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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