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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부흥회 찬송가 202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함은 성경 말씀

르호봇 2022. 11. 1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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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 많이 부르는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이라는 찬송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특별 부흥회를 통해서 죄 사함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부흥 말씀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보혈 찬송을 많이 부를 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심령에 힘이 쏟고 말씀을 들을 때 은혜도 됩니다. 이번 교회 부흥회를 통해서 크신 축복과 은혜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부흥회 찬송가 202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진리의 해방> 8:31-36

 

서론 :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물은 것처럼, 동서고금에 많은 사람들이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물어 왔다.

둘에 셋을 더하면 다섯(2+3=5)이 되는 것은 수학의 진리요, 수소 둘에 산소 하나를 합하면 물 되는 것은 물리 화학의 진리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6:7)

이 모든 것은 세상 범물의 진리이거니와 기독교의 진리는 과연 무엇이냐? , 성경에 소개된 진리는 무엇이냐?

하나님이 진리이시다. <31:5>

예수님이 진리이시다. <14:6>

보혜사가 진리이시다. <14:17>

아버지의 말씀(성경)이 진리이다. <17:17>

진리의 특성이 많으나, 여기에서는 진리의 해방 성에 대해 살펴보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8:34-36)고 언명하셨다. 곧 진리의 해방을 역설하였다.

1. 진리의 해방은 영원불변하다.

 

진리의 특성은 불변에 있다. 조변석개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어찌 진리라고 하겠는가?

얼핏 세상에서는 법률을 진리라고 믿는다. 이것은 국민생활의 표준이요,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나라 법률과 저나라 법률이 서로 다르고, 이 세대의 것과 저 세대의 것이 다르다.

우리나라 정치 역사를 보아도 헌법 개정을 몇 차례나 하였으며, 그 밖에 수시로 개변되는 각종 법령들은 미처 알아볼 사이도 없이 자꾸 변화된다. 사실 법을 고쳐야 유익한 경우도 많고, 변화되어야 좋아질 수도 있다.

인격 도야의 규범을 삼는 도덕을 진리라고 하나 이것도 변한다. "남녀 칠세 부동석"을 주장하던 도덕은 남녀 공학 제도와 모든 사회 부분 직장에서까지 남녀의 구별이 없이 진행되어 나가니 벌써 무너진 도덕 논이다.

풍속과 습관 등은 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차이가 생기고, 장소의 바뀜에 따라 구별되지만, 진리만은 그렇지 않으니 서양에서도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동양에서도 그렇다. 상고시대에도 셋에 둘을 더하면 다섯이 되는 것은 진리였고, 과학이 아무리 발달된 현대에도 결국 같은 원리인 것이다.

 

2. 진리의 해방은 절대 자유이다.

 

'해방'이라는 말은 '자유'라는 말이 꼭 포함되어 있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적용하고 있는 국가에서의 정치는 그 국민들이 언론·출판·결사·신앙·집회의 자유를 누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자유를 공인하고 헌법이 공정하여 만인이 자지 찬동하는 법 제도하에서도 법의 제재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랑하는 부모님 밑에 있는 귀여운 자식이 절대 자유를 누리고 살지만, 그 부모의 사랑의 제재가 있게 마련이다. , 윤리와 규범의 제재라고 하겠다.

사회적으로 이웃과 더불어 공존하며 살 때에 제아무리 유아독존 격으로 자기 유익만 구하려고 하여도 알게 모르게, 나타나 보이게 보이지 않게, 도덕적인 제재를 받고 살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내 자유를 누린다고 하여도 방성 대가를 하거나, 악취를 풍겨 이웃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야밤의 소동으로 이웃의 안면방해를 한다면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5:1)고 하였다.

인생은 누구나 자유를 쟁취의 투쟁사이다. 그러나, 자유를 오해하거나 남용하게 되면 오히려 법에 의해 속박되어 자유를 잃게 된다.

아담,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오해하고 따 먹었기 때문에 그들은 범죄 하였고, 동산에서 추방되었다.

탕자는 아버지에게 재산 분급을 요구할 권리를 알고 강 청하였고, 그 재산이 자기 수중에 들자 자유를 남용하여 허랑방탕 탕진하므로 돼지 치는 종이 되고 말았다. 부모의 제재를 싫다고 제 마음대로의 절제 없는 자유를 누린 결과는 다 이와 같이 파멸이다.

그러나, 진리의 해방은 절대 자유를 부여한 것이니, 신성불가침이라 누가 감히 저를 제재하거나 구속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에게로부터 진리의 해방을 받은 자는 비록 육체가 옥중에 구금당하는 일이 있어도 양심의 자유, 즉 영적 자유를 누린다.

 

3. 진리의 해방은 신앙생활로 견지된다.

 

진정한 신앙에는 제재나 속박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고로 어느 나라 어떤 정치체제이든지 그 헌법에는 종교와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어 있다. 심지어는 무신론을 골자로 한 공산주의 정치체제에서도 신앙의 자유는 명문화되어 있다.

북한 정권 밑에도 정당·사회단체들이 있는가 하면, 소위 기독교도연맹이라는 허울 좋은 단체를 만들어서 겉으로는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것 같으나, 실지는 그들을 앞잡이로 하여 기독교인들에게 자유를 보장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정권 밑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자가 과연 누구인가? 특히, 신앙의 자유를 참으로 누리고 있는가?

영국의 청교도(-리탄)들이 기독교인으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였지만, 영국 국교의 교권 주의자들의 탄압을 받아 그 무서운 박해를 피하여 멀리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민을 가서 먼저 제단을 쌓고 감사함으로 그들은 신앙과 정치의 해방을 다 받았다.

미국 초대 대통령 죠지 와싱톤(J. Washinton)은 대통령 취임 선서에서 "나는 이 나라를 성경 진리 위에 세우겠다"라고 하더니, 오늘날 그 나라(미국)는 지상 최대의 축복받는 나라가 되었다. 정치적 자유도 그 국민들이 신앙생활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분위기 중에서만 성립된다. 신앙의 자유를 국가 정책으로 탄압하는 정권은 반드시 멸망한 것이 역사의 증명이다.

종교개혁가요, 진리의 투사였던 마틴 루터가 연설할 때, "진정한 자유란, 하나님께 대한 절대복종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강연을 듣던 수도사 뷔미는 그 소리를 들을 때 "철거렁"하고 쇠사슬이 풀리는 감을 느꼈다고 했다.

 

결론 : 진리의 심판

하나님께서 진리대로 심판하신다(2:2). 진리의 심판은 진실로 두렵다. 세상 법률의 재판이나 대중의 여론의 판단은 변경될 가능성이 있고, 또 변경해야 유익할 때도 있지만, 진리의 심판은 절대 변화 될 수 없다.

왜 진리로 심판할 수밖에 없는가?

서로 양심적이라고 싸우니, 양심 판단은 하나님께서만 하신다.

서로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싸우고 양보가 없으니,

세계가 평화·자유·해방을 원하나, 사람의 힘으로는 못 한다.

진리의 심판을 면하려면 죄에서 자유를 얻어야 한다. 죄의 자유를 얻기 위해 예수의 능력을 힘입자. 그의 피 공로는 참으로 우리의 자유를 보장한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 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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