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 구약성경 말씀

[창세기 11장 주석성경말씀] 바벨탑 사건 연합과 분리(창 11:1-32)

르호봇 2021. 10. 2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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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은 언어가 하나 임으로 서로 말이 통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바벨탑을 쌓았던 자는 니므롯입니다. 니므롯이 주관하여 하나님께 대적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이 퍼져나가서 번성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한 곳으로 모여 시날 땅에 바벨탑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권력과 의를 드러내는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바벨탑을 보시고 인간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바벨탑 사건 연합과 분리(창 11:1-32)

 

1-9, 바벨탑 사건

본문은 홍수 심판이 있은 후 노아의 자손들이 번성하는 중에 일어난 바벨탑 사건에 대해 증거한다.

[1] 온 땅의 구음(口音)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오늘날 세계에 3,000개 정도의 언어가 있고 그중에 5천만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19개라고 한다. 그러나 본래 아담의 자손들과 노아의 자손들은 한 언어를 사용하였다.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아라랏 산에 머문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과 그 자손은 동방으로이동하였고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에 정착하게 되었다. 시날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의 중하류 평지로 비옥한 메소포타미아 평원 즉 오늘날 이라크의 동부이다. 바벨은 이라크의 알 힐라이다.

[3-4] 서로 말하되 ,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 ()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하였더니.

그들은 시날 평지에 거하며 큰 성과 높은 탑을 쌓을 계획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다. ‘’(이르)도시를 가리키고 ’(믹달)을 가리킨다. 그들은 벽돌을 잘 굽고 역청을 접착제로 사용하여 성과 탑을 만들려고 하였다. 사람의 지혜는 처음부터 뛰어나 고도의 건축술을 개발했다. 그것은 노아와 그 아들들이 거대한 방주를 만든 일에서도 드러났지만 시날 평지에서 그 자손들이 큰 성과 높은 탑을 지으려 한 데서도 드러난다.

창세기 10장은 함의 자손 니므롯의 나라가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다고 기록한다(10:9-10). 바벨탑 사건은 아마 니므롯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많은 학자들은 바벨 남쪽 유브라데스 강 서편 언덕에 흔적이 남아 있는 빌스 니무룻이라는 명칭의 일곱 층계로 된 탑이 이 탑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노아의 자손들이 성과 탑을 건립하고자 했던 동기는 무엇이며 그 일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가지이었다.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그 일을 계획하였다. 그들은 ,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자고 말했다. 그러나 하늘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셨지만 하늘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시편 115:16,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 사람들이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려는 생각은 실상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겸손히 자신과 하나님 간의 무한한 차이를 인정하기보다 하나님과 견주려 하였다.

그들은 마땅히 높임을 받으셔야 할 하나님 대신에 인간을 높이며 자신들의 이름을 자랑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교만, 허영, 자랑, 명예심을 나타낸다. 인간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을 높이고 칭송하며 인간 만세를 부르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악한 일이다. 인간은 그렇게 자랑할 만한 존재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 홍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은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찬송하고 감사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속히 그 은혜를 잊었고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데로 떨어졌다.

그들의 이러한 생각과 태도가 곧 불경건한 세속주의이며 인본주의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이다. 교만과 자랑은 하나님 앞에 큰 죄악, 가장 근본적인 죄악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미워하신다. 사람은 창조자요 구원자이신 하나님만 높이며 자랑해야 한다. 교만과 허영과 자랑은 오늘 우리도 경계해야 할 바이다. 빌립보서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둘째로, 그들은 온 지면에 흩어지지 않기 위해 그 성과 탑을 계획하였다. 그것은 연합과 일치를 추구한 것이었다. 그것은 인류 최초의 영걸이었던 니므롯에 의해 주도되었을 것이다. 불경건과 교만에 근거해 이루어지는 연합은 무서운 폭군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연합을 미워하신 것을 보면, 시날 평지에서의 그들의 시도는 최초의 전체주의적 사회를 지향했던 것 같다. 전체주의란 개인의 모든 활동이 국가 전체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역사상 나타났던 독재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생각이며 그 한 예가 바로 북한이다.

일반적으로, 연합은 선하고 좋으며, 분열은 악하고 나쁘다. 그러나 비자발적, 인위적, 강제적 연합은 나쁘다. 왜냐하면 그런 연합 아래서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연합 아래서는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되고 사유재산권이 부정되며 개인의 특성들이 소멸되며 오직 전체만 남게 된다. 더욱이 그것이 하나님 중심적이지 않을 때 그런 전체주의적 사회는 무서운 괴물이 된다. 역사상 종종 그러했듯이, 그런 사회는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고 신자들을 핍박한다.

현재 세계에서도 우리는 연합 정신을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다. 유엔(UN)과 유럽 연합은 그 정신의 증거들이다. 컴퓨터 문명은 세계 통합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컴퓨터는 국가로 국민 개개인을 한 손에 파악하게 만들고 있다. 성경은 말세에 적그리스도적인 세계 통합과 교회 통합이 있을 것을 예언한다(13:16-18). 주의 재림 직전에 전체주의적 국가와 교회가 나타날 것이라고 보인다.

그러나 참 연합은 하나님을 경외함과 그 진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단합이란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고 진리와 의 안에서 이루어질 때만 좋은 것이다. 진리와 비진리, 의와 불의, 선과 악은 섞이기보다는 분리되어야 한다. 불경건과 교만으로 연합하기보다는 차라리 분리된 상태로 있는 것이 더 유익하다. 거기에는 최소한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자유로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참된 일치는 경건과 의와 겸손과 사랑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

[5-9]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 성과 탑을 쌓는 일을 기뻐하지 않으신 것을 보면 그것은 악한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인본주의적 연합 추구를 기뻐하지 않으셨다. 만일 그것을 내버려 두면, 불경건한 전체주의 사회가 되며 경건한 사람들은 거기에서 소외당하며 핍박당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일을 악하다고 판단하셨다. 그는 오늘날도 참된 진리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연합 운동을 미워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내려오셔서 그들의 하는 일을 보셨다. 그것은 비유적 표현이다. 또 그는 그들이 언어가 하나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행할 수 있었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을 아셨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심으로 그 일을 중단케 하셨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뜨리셨다.

본문은 이와 같이 노아의 자손들이 무엇을 시도했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어떻게 막으셨는지 증거한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계획하고 행하는 모든 일은 성공 같으나 실패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실패케 하실 때 그것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인간의 모든 일은 실패할 것이다. 사람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모든 일을 성공케도 하시고 실패케도 하신다. 인간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127:1-2).

사람이 아무리 무슨 큰 일을 계획하고 실행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미워하시면 헛되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 안에서 계획하고 행해야 한다. 잠언 16:3, 9,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우리는 바벨탑 사건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받는다. 첫째로, 우리는 인간의 교만과 자랑과 명예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높이고 찬송하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교만과 자랑을 미워하신다. 교만과 자랑은 큰 악이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멸하실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높이거나 칭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앞세우고 그만 높이고 그만 찬송하자. 우리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자. 인간은 칭찬과 영광을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가진 모든 좋은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시편 115:1,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하게 우리 자신을 높이거나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높이며 하나님만 찬송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자.

둘째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명령만 지키자.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이것이 성경 전체가 밝히 가르치는 바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계획하고 행할 일은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섬기며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그의 모든 명령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본문은 우리가 이렇게 행할 때 행복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것이 인생의 바르고 복된 길이다.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보이신 선한 삶이 무엇인가? 그것은 겸손하고 경건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가 명하신 계명대로 의롭게 살고 긍휼과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것이 인생의 정로(正路)이다.

요한일서 3:23, “그의[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계명의 요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마디로 요약된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요, 둘째는 그가 주신 새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믿음과 사랑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힘써 실천해야 할 모든 것이다. 그 외의 것은 사실상 본질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자.

10-26, 셈의 후손들

[10]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100세 곧 홍수 후 2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본문은 노아 시대의 홍수 후 2년이 셈의 나이 100세인 해라고 말한다. 창세기 7:11에 홍수가 노아 6002월에 시작되었다고 말하므로 셈은 노아가 502세 때에 낳은 아들이라고 보인다. 창세기 5:32에는 노아가 500세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창세기 9:24는 함을 작은 아들이라고 표현하므로, 셈은 노아의 장자가 아니고, 노아의 세 아들은 야벳, , 함 순서일 것이다. 또 창세기 10:21은 아마 “셈은 . . . 형 야벳의 형제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KJV, NIV). 성경에 , , 야벳이라고 계속 표현되는 것(5:32; 9:18; 10:1; 대상 1:4 )은 중요성의 순서일 것이다.

성경은 주로 셈과 함에 관심을 둔다. 본문은 셈의 자손에 대해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셈의 후손이고 가나안 족속은 함의 후손이다. 성경 역사는 하나님께서 셈의 자손 중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으로 흘러 내려간다. 마침내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그를 통해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구원받을 것이다.

[11-26]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5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35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에 403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셀라는 30세에 에벨을 낳았고 에벨을 낳은 후에 403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벨은 34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43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벨렉은 30세에 르우를 낳았고 르우를 낳은 후에 209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르우는 32세에 스룩을 낳았고 스룩을 낳은 후에 207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스룩은 30세에 나홀을 낳았고 나홀을 낳은 후에 2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나홀은 29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에 119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홍수 후 셈의 자손의 목록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초산 연령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창세기 5장의 아담의 자손의 기록에서는 가장 낮은 것이 65세이었으나 본문에서는 전부 35세 이하이며 대부분 30세 전후이다. 둘째는 수명(壽命)이 점점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홍수 전에는 사람이 보통 900세 이상을 살았으나, 홍수 후에는 셈이 600, 에벨이 464, 그 후부터는 더욱 줄어 그의 아들 벨렉이 239, 데라의 아버지 나홀은 149세까지 내려갔다. 노아 시대의 대홍수 때 대기층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고 태양 광선이 지구에 많이 들어와 사람의 노화(老化)를 촉진시킴으로 사람의 수명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 같다.

[26] 데라는 70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원문은 창세기 5:32과 같은 문장 구조이며 데라가 70세가 된 후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는 뜻이다. 27절과 29절에 보면, 하란은 결혼하여 롯과 밀가와 이스가를 낳았고 그 중 밀가는 삼촌인 나홀의 아내가 되었다. 그렇다면, 데라의 세 아들은 아브람, 하란, 나홀 순서일 것이며, 또한 하란과 나홀의 나이 차이도 컸을 것이다. 데라의 연대는 아담 후 1878-2083년경이며, 아브라함의 연대는 만일 데라가 그를 70세에 낳았다면 아담 후 1948-2123년경이다.

27-32,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

[27-30]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데라와 그 아들들이 살았던 갈대아 우르는 오늘날 이라크의 나시리야에서 서쪽으로 10여km 떨어진 텔 엘-무카야르라고 추정된다. 갈대아 우르는 옛 시대에 문명이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당시에 중산층의 집은 열 개 내지 스무 개의 방이 있는 이층 집이었고, 학교에서 학생들은 읽기와 쓰기와 산수를 공부했고 곱셈과 나눗셈, 심지어 제곱근과 세 제곱근도 공부하였다.

데라의 아들 하란은 그 아버지보다 먼저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다. 데라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불행한 일을 경험해야 했다. 또 그의 아들 아브람(후에 아브라함이라고 이름을 바꿈)은 아내가 자녀를 잉태치 못하였다. 그것도 아버지 데라에게 큰 근심거리이었을 것이다.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는 그의 아들 아브람과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였다. 본문은 왜 데라가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데라와 그 일행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이었다. 창세기 15:7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고 말씀하셨다. 느헤미야 9:7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셨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마 아브람에게 어떤 계시를 주셨고 아브람이 아버지 데라를 설득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여 본다. 사도행전 7:2에 보면,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한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도 하나님을 약간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불행한 일이나 며느리 사라가 잉태치 못하는 근심거리를 통해 인생의 무능력함과 허무함을 느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을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아브람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지 않았을 것이며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난은 사람에게 유익하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 자신의 죄인 됨과 세상의 헛됨을 깨닫게 되고(왕상 17:18; 39:5-6),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한 삶을 구하게 된다(39:7; 고후 1:8-9; 119:67, 71; 12:10-11). 고난은 성도에게 유익하다. 그것은 신앙의 순수함과 성장을 위해 매우 유익하다.

그런데 데라는 가나안 땅으로 가다가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다. 하란은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의 약 3분의 2쯤 되는 곳에 있었다. 데라는 갈대아 우르를 잘 떠났지만, 처음 목표대로 끝까지 진행하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그는 중도에 하란에 거주하고 말았다. 데라가 중도에 주저앉고 만 것은 그의 연약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데라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지 못했다.

하란은 여전히 우상숭배적인 환경이었다. 데라는 우상숭배적 환경을 완전히 떠나지 못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하였다(24:2). 데라의 아들 나홀은 처음에 아버지와 함께 오지 않았으나 후에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온 것 같다. 그래서 후에 야곱은 하란으로 가서 나홀의 손자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살았다(27:43; 28:10). 그러나 나홀도 우상숭배적 요소를 완전히 떠나지 못했고 그 요소들이 야곱의 가족들에게도 남아 있었다(31:19; 35:2-4).

[32] 데라는 250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창세기 12:4는 아브람이 하란을 떠난 것이 그가 75세 때라고 증거하므로, 데라가 70세에 아브람을 낳았다면, 아브람은 데라가 145세에, 즉 그가 죽기 전에 하란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이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에 하란을 떠난 것이라면, 데라는 아브람을 130세에 낳은 것이라는 말이 되는데, 그 해석은 그렇게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몇 가지 교훈을 받자.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광야 같고 나그넷길 같은 세상,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있고 불행한 일들이 많은 세상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허무함과 무력함을 깨닫고 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닫고 하나님을 알자. 세상에서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둘째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자. 세상은 우상숭배와 부도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을 악하고 음란한 세상이라고 말씀하셨다(12:39). 우리는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갈대아 우르 같은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 구원 운동은 분리 운동이다. 구원은 죄로부터 분리되고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데라처럼 가나안 땅으로 가다가 중간에 하란에 주저앉는 불완전한 구원 말고 모든 죄를 회개하고 천국만 사모하며 사는 완전한 구원을 받자.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는 이제 죽도록 충성하자. 주께서 교훈하신 대로 자신을 부정하고(10:37-38) 하나님의 참된 교훈을 마음에 간직하고 인내로써 순종하여 선한 열매를 맺자(눅 8:15). 우리는 처음 믿을 때 시작한 것을 끝까지 굳게 잡자(3:14). 그것이 참된 믿음이며 참된 구원이다. 또 주께로부터 직분을 받은 자는 그 임무를 완수하고(4:17) 죽도록 충성하자(2:10).

[사무엘상 히브리어 설교말씀] 벧세메스로 향하는 암소의 숨겨진 구속사(삼상 6:10-16)

 

[사무엘상 히브리어 설교말씀] 벧세메스로 향하는 암소의 숨겨진 구속사(삼상 6:10-16)

사무엘상에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법궤를 블레셋 민족에게 빼앗겼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블레셋 민족을 심판하셨습니다. 법궤가 가는 곳마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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