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사기 16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불행과 몰락으로 가는 길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특별히 불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삼손이 소렉 골짜기에 사는 들릴라를 사랑하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구속사 관점에서 들릴라는 음녀입니다. 거짓 복음을 가지고 있는 자를 사랑하니 문제가 생깁니다. 이 여인 때문에 머리가 밀려서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블레셋 민족에게 붙잡혀 눈이 빠지고 연자 맷돌을 돌려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음녀와 같은 거짓 복음을 전하는 이단자들에게 붙잡히면 영혼이 이렇게 고통받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거짓 복음을 구분하여 이단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불행과 몰락으로 가는 길(삿 16:15-22)
삿 16:15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삿 16:16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삿 16: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삿 16:18 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삿 16: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삿 16: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삿 16:21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삿 16:22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독일의 유명한 염세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는 어느 날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습니다. 여러 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다 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공원은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텅 비었습니다.
공원을 청소하던 공원지기 한 사람이 그를 발견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여보시오, 당신은 누구요? 어디서 왔길래 해가 지는데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않고 이곳에 죽치고 앉아있는 거요?" 이 공원지기의 말에 쇼펜하우어는 어두운 얼굴을 쳐들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것이요,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그것 때문에 내가 지금 번민하고 있는 중이요"
이 일화는 오늘날 고민과 번뇌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인의 모습을 대표하는 한 실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민하며 사는 사람은 죽음을 서둘러 초청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홀뎅이라는 사람은 자기의 건강에 대해 많이 번민하는 사람 치고 건강한 사람을 보지 못했고, 자기의 영혼에 대해 많이 번민하는 사람 치고 선량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번민하며 사는 존재인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삼손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사기 13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실인으로써 이스라엘에 보내어진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삼손은 역발산 장수입니다. 나귀 턱뼈 하나만 가지고 일천 명의 블레셋 군사를 쳐 죽인 능력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워주시고 위대한 능력을 주신 삼손의 마음속에도 번민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오늘날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도 번민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받은 사람도 때에 따라서는 번민할 수 있으며 신앙생활을 잘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깊이 볼 수 있는 사람, 기도 많이 하는 사람도 번민의 자리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잠언 15장 16절에서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말씀함으로써 돈이 많은 것보다는 가난할지라도 하나님을 잘 믿고 마음 편안한 사람이 복 받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크게 부자가 되기를 갈망하십니까?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습니까?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은 비록 가난하고, 먹을 것을 겨우겨우 해결한다 해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이 돈 많고 고민하는 사람보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면서 괴로워하고 번민하는 것처럼 큰 불행은 없습니다. 마음이 편해야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모든 생활과 신앙생활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하는 사람 중에도 심령에 고민이 많은 사람은 신앙생활도 정상적이지 못하고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잘못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인생이라는 영어단어 "LIFE"에서 "I"과 "E"를 빼면 "IF"로 "만일 "이라는 뜻이 됩니다. 노만 빈센트 빌 박사는 인생의 현주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만일'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불확실한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기대감 또는 어떤 후회로 가득한 것이 인생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마음속에 자꾸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고민의 고민을 자꾸 쫓아 들어가다 가는 결국 그 고민으로 말미암아 패망하고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명의 블레셋 군사를 나귀 턱뼈 하나로 쳐 죽였던 삼손, 부러울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힘 좋고, 성령 충만하고, 부모 좋고, 사사인 그는 모든 것에 축복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번민에 빠질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신앙 좋고, 가정 좋고, 부부의 금실 좋고, 자녀가 잘하고 모든 면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도 자칫 잘못하면 번뇌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삼손의 마음은 번뇌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고 했는데,, 히브리말에 "번민"이라는 말의 종류만도 수십 가지가 있는데 '삼손이 번뇌하였다'는 말은 히브리어의 '알라츠'라는 말로 '침착성을 잃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속에 조급성과 성급함이 자꾸만 끓어오르고 마음이 공연히 슬퍼지고 괴로워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번민에 빠지게 되면 그 마음에 침착성이 사라지고 성급한 마음, 낙심하는 마음, 슬프고 괴로운 마음이 끓어오르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고민과 고통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괴로움을 조명해보면서 말씀 속에서 해답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사람이 번민에 빠지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사람 때문에 번민합니다.
교회생활에서도 사람 때문에 상처 받고, 사람 때문에 고민하고, 사람 때문에 번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대인관계 때문에 번민하다가 사표를 내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인간관계의 부딪힘과 사람 때문에 번민하면서 신앙적으로 방황하다가 믿음에서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라고 합니다. 삼손은 들릴라 때문에 번뇌에 빠졌음을 보여줍니다. 들릴라는 어떤 사람입니까? 들릴라는 삼손과는 종교가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생활이 다른 이방인 블레셋 사람이며, 돈에 눈이 어두워 사랑을 배신한 물질 주의자입니다. 이렇게 사상과 습관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물질에 대한 개념이 다른 두 사람이 비정상적인 관계에서부터 삼손의 마음은 번뇌로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칡넝쿨은 자라면서 다른 나무를 휘감아 말려 죽이듯이 들릴라 같은 여자를 만나게 되면 삼손 같은 역발산 장수도, 문제에 시달리게 되고 번뇌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삼손이 이방 여인 들리라와 교제하듯이 이성문제 때문에 번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고부간의 갈등과 문제도 큰 번민이 됩니다. 같이 살아가는 부부가 이상이 서로 안 맞아서 갈등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장사를 해도 동업을 해도 종교가 달라서 갈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로 맞지 않는 이질적인 사람끼리 관계를 맺다 보니 번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격이 맞는 사람이 없다고 답답해합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를 잘 유지해야 합니다. 인간관계 때문에 손해를 입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신앙의 고통을 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플라톤의 제자 중에 프로칠로오스가 있는데, 돈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지중해 바다에서 배를 저으며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폭풍이 밀려오면서 배가 전복되어 죽을 뻔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내 방의 모든 창문을 다 막아라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면 또 나가고 싶을 거야. 은빛 찬란한 지중해 바다가 또 나를 유혹할 테니 아예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이 사람과 같이 사람은 다 자기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의 약점을 아는 사람이 참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신앙과 인격과 생활의 약점을 잘 알아내어 그 약점에 아픔을 주고 공격하는 사람을 피할 때 우리는 번민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둘째 말 때문에 번민합니다.
본문 5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돈을 많이 가지고 와서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돈에 눈이 어두운 들릴라는 그날부터 삼손에게 말로 조르고 괴롭힙니다. 당신의 힘의 근원이 어디에서 납니까? 어떻게 하면 당신을 결박하여 곤고케 할 수 있는지 말하십시오. 자꾸 애교로, 떼를 쓰며 말합니다. 그때마다 삼손은 말합니다. '마르지 아니한 칡넝쿨 일곱 가닥으로 묶어봐 또 쓰지 아니한 새 줄로 묶어봐, 내 머리털 일곱 가닥을 위선에 섞어 짜 봐 그러면 내가 힘이 떨어질 거야." 그러나 모두 거짓말임을 알자 들릴라는 말로써 삼손을 재촉합니다.
본문 15-16절에는 "당신이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 당신이 이 세 번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여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라고 합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들릴라가 삼손에게 부탁하고 압박하고 강요하므로 삼손의 넋이 나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삼손에게 고통을 주었던 들릴라의 말은 날마다 똑같은 말로 잔소리하는 것이었고 재촉하고 독촉하며 조르는 말이었습니다. 사람의 언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주신 특별한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통해 인간의 관계를 만들어 나갑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말을 쓰느냐?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상대방이 받는 느낌이 다릅니다.
미국 LA 필라델피아 교회에 한 집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미국에서 복권을 샀는데 200만 불이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직장일도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다음날 아침 회사에 출근하니 백인 동료들이 일을 하나도 하지 않고 자기만 쳐다보면서 야! 얼마나 좋으냐? 그 돈 다 어디에나 쓸래? 하며 매일매일 자기를 부러운 듯 쳐다보면서 일을 못하길래 그 집사는 자기를 부러워하는 말이 부담이 되어서 직장에 사표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깡패들이 돈 좀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그래서 밤에 대강 짐을 싸서 야반도주했습니다. 그리고 LA로 도망을 와서 이름도 바꾸고 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자꾸 부러워하는 말일지라도 자꾸만 들으면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가정에서도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긍정적이며 위로하는 말, 소망적인 말, 이런 말을 해야 하며 남을 망하게 하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나고, 들어서는 안 될 소리를 들으면 사람은 누구나 고민하게 됩니다. 고민하다 보면 탈진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꺾어지는 것입니다.
삼손이 탈진하여 넋이 빠졌을 때 들릴라가 다시 유혹을 하니 삼손은 넘어가고 말아 자기의 비밀을 털어놓았습니다. 결국 머리카락이 깎이고 눈알이 뽑혀 블레셋 사람 앞에서 재주를 부리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쓸데없는 것을 두고 고민하고 번민하다 보면 영안이 어두워집니다. 세상과 벗하여 살려고 하면 자연히 세상 일로 번민에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늘을 높이 나는 독수리는 넓은 강을 어떻게 건널까 고민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고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참새처럼 낮은 데서 날아다니며 고민하지 말고 독수리같이 높이 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땅에서 세상적으로만 살면 세상적인 사람을 만나고 세상적인 말을 듣다 보니까 괴롭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높은 경주로 올라가십시오. 하나님이 은혜의 깊은 세계, 높은 세계에 들어가면 번민이 다 해결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깊은 세계를 체험함으로써 고민을 극복하고, 번뇌를 넘어갈 수 있는 놀라운 영적인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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